№ 042  ·  2025.06.25 Shorts

생각의 자유의지는 있는가? 만년필 글쓰기

2025년 6월 25일.

역시나 가장 큰 난제는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이 생각 현상의 자유의지 여부이다. 간단히 논리적으로만 생각해보면 이 문제의 답은 간단해 보인다. 논리적 전개로 두가지 가정을 각각 시험해 보면 되는데 먼저 이 글을 작성하며 이 문제의 답을 생각하고 있는 이 생각 현상에게 생각 현상의 발현에 대한 자유 의지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이 문제를 생각해낸 것도 자유 의지이고 결국 자유 의지가 있다고 결론 내리는 생각도 자유의지에 의해 발생하고 있는 것이므로 어떠한 모순도 없어 보인다.

그럼 반대의 가정을 해보자. 방금 반대의 가정을 해보자는 생각부터 이미 자유의지가 없이 수동적으로 발현하여야 하는 생각이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인정할 수 있다. 그런데 방금 인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 생각마저 자유의지가 아닌 수동적인 생각 현상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나에게 자유 의지가 있는가를 고민하는 것에서부터 자유의지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현상 모두가 수동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방금 수동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한 것마저 수동적이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맞는 것인지 고민하는 현상 자체가 고민이 아닌 역설 혹은 모순을 가지게 된다.

이처럼 두가지 답에 대해 논리적으로만 생각해보면 마치 너무나 명확하게 나라는 생각 현상은 스스로 자유의지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라고 결론 지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우선 논리적 접근이라는 생각 현상에 대해 생각해보면 이것이 이분법적인 개념화를 전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유의지가 100% 있거나 100% 없거나를 결정론적으로 가정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우주의 현상은 항상 확률적이다. 다시 말해서 100%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 생각 현상의 자유의지는 100%가 아닌 일부 확률적인 가능성으로 발현한다는 말인가? 그래서 대부분의 생각 현상은 자유의지가 아닌 수동적인 발현이고 일부 확률로 자유의지가 발현된다는 것인가? 그럼 그 자유의지의 주체는 무엇인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이 개체인가? 아니면 내가 주장하던 생각 현상의 단위인가? 아니면 그보다 더 작은 단위를 상정해야 하는가? 생물의 진화에서 이야기 했듯이 이 단위는 단지 설명의 편의를 위한 Sweet-spot일 뿐이며 실제로는 이 우주의 모든 것의 모든 것에 대한 나름의 가중치를 가진 상호작용으로 발현하는 현상이다.

그 중에 이와 같이 스스로가 스스로를 인식하는 현상으로서 나와 같은 현상이 발현하고 있고 이는 생물 진화의 결과의 연속이기에 마치 이 개체를 자기 자신이라고 인식하게 되는 생각 현상이다. 그래서 너무나 자연스럽게도 이 자아는 스스로가 시간 개념으로서 연속된 존재라고 이해하게 되고 매 순간 소멸과 재생성을 반복하는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소멸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죽음이라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현상이다. 스스로는 우리가 죽음이라고 이해하는 상황 이후에는 스스로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인지하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 2025 SYL  ·  CC BY 4.0  ·  유튜브에서 보기 / Watch on YouTube ↗